남편의 출산 노트 1<확인편>

임신 테스트기 두 줄 확인과 난임 병원 1차 피검사

두 줄이 나왔다. 돌이켜보면 어떤 표정과 멘트를 아내에게 보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정말 임신인지 확인하려면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해봐야 하니 그때까지 평정심을 유지하자고 덤덤하게 말했다. 아내도 그렇게 감정에 휩쓸리는 것 같지는 않아 안심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드라마 주인공처럼 엄청나게 기쁜 표정을 보여주고 환호성을 들려줘야 했는데 이게 정답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속으로 ‘어… 진짜?’라는 되물음이 나왔다. 좋은 아빠는 고사하고 지금까지 오답만 내밀어 보이는 남편이었던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여자가 아이를 품기 때문에 남자는 사실 별 다른 역할이 없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과거를 복기할수록, 출산과 육아에 대해 찾아볼수록 내 생각은 틀렸다고 생각이 들어 그동안의 순간 순간을 기록하기로 했다. 나 같은 남편이 없다면 다행이겠지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초보 아빠가 있다면 이 기록은 일말의 도움이라도 될 것이다. 설령 남에게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이 기록을 통해 내가 가졌던 생각과 변화를 되짚어 보는 것도 앞으로를 위해 좋은 다짐이 되리라 믿는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내에게 기쁨을 표현해주세요.
무심하게 넘어가면 평생 상처로 남을 수 있습니다.

내가 마냥 기뻐하기를 주저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2025년 1월부터 시작해 2차례 유산을 경험하고 이번이 3번째 임신이었다. 유산 후의 감정은 물론 슬픔이지만, 이것이 어느 정도의 깊이인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아내는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자기 자신이 무너져 내릴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따라서 이번에 임신은 신중했다.

아내와 나는 둘 다 마흔 살이 넘어 시간을 더 지체하면 안 됐기에 난임병원을 다니며 시험관을 진행 중이었다. 두 번째 유산 후 병원에서도 큰 기대 없이 남은 배아를 이식해보자고 한 것이 임신에 이르게 됐다. 이후 몇 차례 임신테스트기로 확인해보니 빨간 줄은 갈수록 또렷해져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진 상태에서 병원에 가 피검사를 진행했다.

📌 임신테스트기가 아닌 피검사로 임신을 확정하는 이유

임신 호르몬(hCG)의 양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소변을 통해 임신 호르몬이 있다/없다를 알려주는 임신테스트기와는 달리 혈액 검사를 통해 호르몬이 정확히 얼마나 있는지 숫자로 확인하며 일정치를 넘었을 때 안정적으로 임신을 판별한다. 소변의 경우 물을 많이 마시면 농도가 옅어져 임신 초기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혈액은 수분 섭취와 상관없이 호르몬 농도가 일정하므로 정확한 임신 여부를 알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다녔던 난임병원은 아내의 직장에서 버스로 한두 정거장 거리에 있다. 만약 직장이나 집에서 거리가 꽤 됐다면 이렇게 일을 병행하면서 배란주기에 맞춰 난자를 채취하고 이식하고 착상과 아기집 형성 등 일련의 과정에 집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내의 직장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우리에게 맞는 난임병원이 있다는 것은 생각치 못한 행운이었다.

병원에 들어서면 언제나 낯설다. 밝은 표정의 임산부(정확히는 임신 희망자)나 남편의 모습을 발견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핸드폰도 잘 보지 않는 경건한 분위기다. 그렇다고 슬픔에 잠겨있는 표정도 아닌 숙연 그 자체의 풍경이 연출된다. 우리는 어쨌거나 임신 경력자(?)였기 때문에 그날도 피검사를 진행하고 수치를 확인하는 익숙한 과정을 거쳤다.

혈액 속 임신 호르몬 수치는 230이 나왔고 예상대로 임신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틀 후에 한 번 더 있을 피검사가 우리에게는 더 중요했다. 오늘은 긴장감이 조금 남아있다.

정상적인 임신이라면 이틀 뒤 피검사에서 수치가 2배 이상이 나오는 더블링이 진행되는데, 우리는 이 더블링에서 좌절한 기억이 한 번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230이라는 숫자를 들었을 때 안도했지만 아직 웃을 수는 없었다. 물론 아내 앞에서는 “숫자가 괜찮네”라고 말할 뿐이었다. 아내도 조금은 안도하는 표정이었지만 나와 생각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 hCG 수치의 더블링이 중요한 이유

더블링 현상은 초기 임신에서 아기가 잘 자라고 있는지 판단하는 핵심적인 지표다. 의학적으로 ‘태반을 형성하는 세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다. 초기 태아의 세포 분열 속도는 어마어마하게 빠른데 세포가 2배, 4배, 8배로 늘어나듯 호르몬 수치도 이에 맞춰 늘어나야 한다. 일반적으로 48시간마다 약 2배씩 늘어나야 정상적인 속도로 본다.


이틀 뒤 더블링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수치를 확인하러 다시 병원에 갔다. 난임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전 대기할 때 그 적막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보통 아침 시간에 오기 때문에 주로 임산부가 병원을 채우는데 그날은 얼마나 많은 임산부가 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기억나는 것은 그날 이후로 출산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씩 자각했다는 것이다.

우리 차례가 되자 덤덤하게 진료실로 들어갔다. 약간의 긴장감은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정신은 맑았고 차분했으며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 같았다. 담당 선생님께서 호르몬 수치는 493이라고 확인해주셨다. 지금까지는 보지 못한 수치다.

“이 정도면 안정권입니다.”

더블링에 완벽하게 성공한 것이다. 이것으로 마침내 1차 관문은 통과한 셈이 됐다.

요 며칠 간 얼떨떨했던 마음이 조금씩 실감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들일까 딸일까. 그 전에 쌍둥이일까. 예정일은 언제고 성별은 언제쯤 알 수 있지? 이름은 뭘로 지어야 하나? 정돈되지 않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찾아오고 이렇게 출산 준비는 시작됐다. 물론 아직은 낯설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은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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